절망속에서 소망의 노래를 부르다 (예레미야 애가 5: 19- 21 절)
절망속에서 소망의 노래를 부르다
2018년 11월 11일
본문 : 예레미야 애가 5: 19- 21 절
영상... ~
노래는 이태리어인데 내용은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정의와 희망의 세상.. 모두가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세상.. 주님이 주신 사랑의 힘으로 저희의 삶을 평화롭게 하옵소서 주님 긍휼을 베푸셔서 모든 영혼이 주님의 사랑을 만나게 하옵소서 어린아이같이 순전하게 비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믿음을 주셔서 평안케 하옵소서 저희를 구원해주옵소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편견과 조롱을 당하였지만 당당히 소망의 노래를 부르는 17살의 이 아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환호를 이끌어내고 말았습니다
이번 주에 읽게 되는 말씀은 남유다의 멸망속에서 눈물을 넘어서서 소망의 노래로 백성들을 위로하고 환호하게 하는 장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남유다의 멸망과 베벨론 포로 70년의 예고를 하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이야기입니다
본문은 열왕기하 24-25장과 예레미야와 예레미야애가 그리고 오바댜서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 유다의 징계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바벨론 70년동안 어떻게 진행되는 예레미야서를 통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고 애간장이 녹듯이 그렇게 울고 있습니다 애2: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마치 1905년 을사 늑약을 쳬결할 때 황성신문에 장지연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代哭)’을(이 날에 목놓아 우노라) 썼을 때의 분위기라고 볼수 있습니다
마지막 절에 보면 ....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과 기자 이래 4천년 국민 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나라의 멸망을 목격하면서 예레미야 애가를 쓴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이 애가는 시일야방성대곡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섭리하심을 깨닫게 하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에는 절망의 분위기속에서 펼쳐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보며 소망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말씀으로 끝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남유다 사람들을 징계하시고 연단하시는 가운데 남은자 즉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라 등의 사람들을 통해서 다시 구원하시는 계획을 펼쳐가신다는 것을 예레미야는 듣게 됩니다 그 기간은 70년이고 그 이후 다시 남유다는 포로에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치하 36년 말기에 모든 사람들이 독립에 대한 소망은 고사하고 의식도, 이름도, 생활도 다 일본의 강력한 힘앞에 절망을 느끼며 무너져 갔지만 그 중에서도 끝가지 이름없이 빛없이 독립을 외치며 살아갔던 분들 때문에 광복절이 빛을 발하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이라는 강력한 나라의 침공으로 B.C 586년 남유다는 18개월을 버티다 완전히 무너지고 맙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고 시드기야 왕의 두아들이 죽음을 당하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로 다니엘등과 함께 1차 포로로 끌려가고 2차 포로로 에스겔과 1만명의 사람들이 끌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이러한 절망속에서 소망의 노래를 부릅니다
첫 번째가 애가서 3: 21절에 나옵니다
애3: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애3: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애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하심을 기대하고 노래합니다
두 번째가 오늘 읽으신 말씀입니다
애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절망속에서 다시 우리의 날들을 새롭게 해주시옵소서 기대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2018년 11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고 우리의 연수도 그만큼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수고와 슬픔은 더욱 마음에 연륜처럼 쌓여져 갑니다
이번 주에 천마산 기도원에 있으면서 단풍이 급격하게 낙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2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 떨어진 수만의 잎사귀들이 하나같이 다 상처가 있었습니다 벌레가 먹고 끝이 말리고 바람에 상해 찢어지고 그렇게 하나같이 상해 있었습니다
2) 떨어지는 낙엽들이 모두가 다 다르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은행잎 하나가 종이비행기 날 듯이 그렇게 커다랗게 원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심히 보았습니다
어떤 잎은 직할강하듯이 급하게 떨어지고 어떤 잎은 나풀나풀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상처 입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없습니다 사람 때문에 환경 때문에 자연재해 때문에 그리고 관계 때문에 모두가 상처들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떠나는 모습도 다 다르지만 하나같이 아래로 다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절망속에서 낙심속에서 우리는 그대로 허무하게 내리막길을 걷는 것일까....
그런데 예레미야의 기도는 다시 우리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옵소서 옛적같게 하옵소서
소망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망의 노래가 여러분의 삶에 있으십니까?
2019년을 펼쳐가실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있으십니까?
또한 새롭게 하시는 날마다의 날에 대해 감사와 감격이 있으십니까?
아침마다 일어나서 주변을 돌아보고 출근을 하다가 잠시 온갖 색깔로 변한 낙엽을 쳐다보면서 희망과 소망의 언어가 생성이 되십니까?
오늘 예레미야는 2가지 근거로 소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다시 새롭게 하실줄 로 믿고 소망의 생긴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호와는 영원하시기에 내가 의지함으로 소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다시 새롭게 하실 줄로 믿고 소망을 가지시길 기도합니다
애3: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애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여기서 인자란 자비로운 마음, 따듯한 마음이고 긍휼이란 영어로 컴패션, 함께 아파하고 함께 느끼는 감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자비하게 대하심이며 긍휼하심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속의 역사를 펼쳐가신 그 과정은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불쌍히 여기심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잃어버린 둘째 아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에서 감동적인 것은 탕자와 같은 둘째 아들이 초라하게 집으로 돌아올때에 아버지가 달려가서 끌어 안는 장면입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습니다 아무런 댓가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냄새나고 초라하고 재산을 다 탕진한 둘째를 끌어안고 반기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있습니다
'인자'라는 본문의 히브리어 원어는 '헤세드'(חסד)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약백성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의지를 말씀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언약백성을 사랑하되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그 대상자인 언약백성이 배반해도 절대적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징계를 하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그의 절대적 사랑 때문에, 그 가운데 허락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사람을 대할 때 절대적으로 인자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판단하고 평가하고 강요합니다 댓가를 요구하고 질책하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합니다
- 주변에 인자한 분들이 있는가 ? 별로 없습니다 특히 세상살이에서는 절대로 인자하면 손해보기에 거칠고 방어하고 냉정합니다
인간은 인간에게서 인자와 긍휼을 찾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고 특히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냉정한 엄마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상징은 무엇입니까? 따듯하고 인자한 품입니다 거친 세상에서 안아주고 위로할 품인 것입니다
- 또한 주변에 긍휼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분들이 있나요 ?
대부분 판단하고 공격하러 다가오지 같이 아파하고 같이 울러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비유는 예수님의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양 한 한 마리를 잃어버린 목자는 99마리를 들에 두고 한 마리 어린 양을 찾아 나섭니다 혹시 짐슴에 찢겨 고통을 당하지는 않을까?
혹시 골짜기에 빠져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슬피 울고 있지는 않을까? 애타게 찾아다니는 목자로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찾아내서 기뻐하며 안고 오는 목자의 마음 그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긍휼하신 하나님의 성품인 것입니다
인간은 전쟁중 피란길에 힘들어서 자식의 손을 놓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어려우니 자식을 식모로 서울에 올려 보내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9살 10살난 여자아이를 결혼시켜 돈을 챙기는 일도 있습니다
조금만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위라는 생각을 하면 함부로 하는 사림들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살이입니다
인간은 정말 인자하지 않고 긍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의 말씀대로
롬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특히 전쟁중에 인간은 피폡해지고 거칠어집니다 강국 바벨론은 남유다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대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 와중에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합니다
인자하심과 긍휼히 여기심 ....
여기에 우리의 신앙의 자리가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경배의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조용히 성전에 들어와서 거칠고 황폐해진 우리의 심령에 다시 온기를 느낄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히 여기심이 기대가 됩니다 새로운 기대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나를 향한 구원하심과 불쌍히 여기심이 결코 우리를 정말속으로 내동댕이 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낙심속에서 달려 오셔서 안아주시는 하나님, 온 들판을 찾아다니며 나를 놓치시지 않는 그 하나님 그분을 믿을 때 우리는 비로서 소망의 노래를 부를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에는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표현하십니다
계21:3 .....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오늘 그러한 은혜가 경험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둘째는 여호와는 영원하시기에 우리 모두가 의지함으로 소망이 생기시길 기도드립니다
애5:19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오래가는 것, 영원한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삶을 보면 어느새 30세가 되고 50세가 되고 70대가 80대가 됩니다 순식간에 다가옵니다 사람도 변하고 자연도 변하고 물건도 변합니다
그래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다이아 금 등을 귀하게 값어치를 칩니다
물건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지는 것을 명품이라고 합니다
명품의 기준이 있습니다 1)역사, 2)퀄리티(질) 3)마케팅입니다
1) 한 브랜드의 역사가 3세대를 거치지 않고 명품이 될 순 없다고 합니다 브랜드의 시작과 시간의 흐름, 해당연도마다의 출시 제품들에 관한 기록들을 보존하는 동안, 그 세월을 지켜온 역사성은 클래식이 되고, 클래식은 높은 값으로 환산되어 부가가치가 높여지는 것입니다
2) 퀄리티는 명품의 절대적 조건입니다 퀄리티는 제품을 만드는 기법과 소재로부터 오는데, 그것은 '패셔너블하다'는 가치보다 우선됩니다 .
소수의 숙련된 장인들이 그 가문만 공유하는 독특한 공법으로 만드는 테스토니 구두와, 최고의 가죽을 가공하며 특별한 노하우로 만드는 에르메스 가죽제품은 시장에서 파는 제품과는 확연히 퀄리티가 다른 것입니다
3) 명품의 역사와 퀄리티를 포장하는 마케팅은 현대적 측면에서의 명품의 조건이 됩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역사성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오래가는 가치입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입니다 정말 인간이 원하는 것은 바로 영원한 가치입니다
영원한 것을 붙잡느냐는 것은 그 인생이 명품의 인생을 살아가느냐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를, 세상의 모든 것만을 목표로 하는가 아니면 영원한 것을 붙잡고 사느냐는 삶의 생명력과도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앙생활의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젊은이들이 결혼하여 보금자리를 꾸몄답니다. 두 사람은 소문난 잉꼬 부부였습니다. 그들은 30년 동안을 함께 살면서 자기들의 말대로라면 단 한 번도 서로를 미워할만 한 부부 싸움은 한 일이 없었다는 그런 부부였습니다.
아들 하나에 딸 하나를 낳아 곱게 잘 길렀습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주위에서 전도할 때면 부부가 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 예수가 끼어들면 재수없다면서 거절할 정도였답니다. 그들은 늘 입버릇처럼 우린 한 날 한 시에 함께 죽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31년째 되던 어느 늦가을 오후 낙엽이 떨어지듯이 심장 마비로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을 남겨둔 채 남편이 먼저 간 것입니다. 그토록 믿고 의지했고 사랑했던 그녀의 반석이 무너진 것입니다.
남편의 장례식을 마치고 그녀는 충격과 슬픔으로 자리에 몸져 눕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준비해 두었던 수면제를 먹고 남편 곁으로 간다는 유서를 남긴 채 두 눈을 감았답니다. 하지만 다행히 가족들에게 발견이 되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 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눈물을 흘리며 영원한 반석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31년 동안 믿고 의지했던 그녀의 반석이었던 남편은 그를 떠나갔지만 그 대신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님이 그녀 곁으로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녀의 마음속에 위로와 화평과 평안함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다시 소망의 인생의 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이 다가오는 이 시간 우리는 다시 소망의 노래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자와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분을 소망하시면서 우리의 이 거친 광야를 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소망 다 사라져 가도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1. 주 나의 모습 보네 상한 나의 맘 보시네
주 나의 눈물 아네 홀로 울던 맘 아시네
세상 소망 다 사라져가도 주의 사랑은 끝이 없으니
살아가는 이 모든 순간이 주 은혜임을 나는 믿네
2. 주 사랑 내게 있네 그 사랑이 날 채우네
주 은혜 내게 있네 그 은혜로 날 세우네
세상 소망 다 사라져가도 주의 사랑은 끝이 없으니
살아가는 이 모든 순간이 주 은혜임을 나는 믿네 주 은혜임을 나는 믿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