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따라 사는 삶, 말씀따라 사는 삶 (창세기 17: 1- 7절)
세상따라 사는 삶, 말씀따라 사는 삶
2018년 8월 26일
본문 : 창세기 17: 1- 7절
세상을 사는 모습을 보면 두 가지의 양상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종속 가치적인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환경과 여건에 따라 반응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대응하며 사는 삶입니다(한마디로 한만큼 해준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기억나는 한가지가 있습니다 고참들이 신참을 괴롭히는 방법중에 하나가 두사람을 마주세우고 한 대씩 뺨을 때리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살짝 때립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살짝 때립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세게 때립니다 그러면 맞은 사람도 세게 때립니다 점점 더 감정에 휩싸이고 마침내 머리가 휙 돌아갈 정도로 때리면서 싸우게 됩니다 고참들이 얼마나들 재미있어하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경우 감정이 상대방의 반응 그대로 노출됩니다
미워하고 공격하고 상대방이 한 만큼 그대로 하든지 아니면 그 이상 반응하며 살아가고들 있습니다
또 환경의 평가에 따라 자신을 평가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힘들고 가난해서 괴롭고 없어서 한스럽고 미워죽겠어서 버거운 것입니다 다람쥐 쳇바퀴돌 듯이 그렇게 항상 똑같이 반응하고 분노하고 아파하고 지치게들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들 있습니다
둘째는 창조 가치적인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환경과 여건에 따라 반응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대응하지 않는 삶이 있는 분들을 봅니다 자신의 삶의 원칙과 소신과 넉넉함을 가지고 사는 삶입니다
저는 가끔씩 성경을 읽다가 현실과 너무 안맞고 따라살기 힘든 말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5: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이 말씀은 정말 지키기 힘든 말씀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말씀들이 정말 살면서 지키기 버거운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깊이 생각해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 가지는 예수님께서는 종속적인 삶을 살지 말라고 강조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살면 정확히 말해 그 사람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환경에 따라 감정과 생각으로 대응하면 그 환경에 끌려 다니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번에 솔릭이라는 태풍도 보면 그렇습니다
온 나라가 8일동안 태풍때문에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집마다 신문지를 붙이고 테이프를 붙이고 그런데 정작 우리가 예상한 만큼 고통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실제 피해보다 훨씬 더 큰 공포를 가지고 지냈던 것입니다
큰 공포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생각이 필요합니다
대비는 하면서도 부산스럽고 경거망동하지 않습니다 일본 방송의 예보도 들어봅니다 또 이 전에 보면 육지에 상륙하여 사라지는 많은 태풍들이 있었던 것도 기억합니다 공포 이상의 다른 마음의 대응들을 하는 것이지요 ...
그 이상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을 창조적 가치의 삶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조금 더 넉넉하고 풍요한 삶을 원하신다면
환경과 여건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분명한 삶의 방식이 있어야 합니다
환경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공격을 다르게 대응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삶이 훨씬 의미있고 가치있고 행복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적 가치의 삶의 추구하며 살았던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의 부정적인 상황을 자세히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의 나이가 늙었습니다
둘째는 아이를 낳아야 할 아내 사라의 경수가 이미 끊어졌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약속, 즉 네 씨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1. 그런데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여기서 완전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타밈입니다 성실하라 흠이 없어라 라는 뜻입니다
즉 여건대로 반응하지 말고 환경을 보고 의심하지 말고 성실하게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하신 말씀, 2가지를 성실하게 끝까지 믿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때에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 였습니다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이제 24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더욱 늙었습니다
더욱 환경이 열악해진 것입니다 여건이나 환경을 보면 도저히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리라는 생각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환경을 보지말고 여건을 보지말고 나의 언약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완전하게 성실하게 흔들림 없이 믿으라 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은 내면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입으로 아멘을 해도 속으로 믿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봉사를 해도 내면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성실한 믿음이 없다면 자신의 의를 쌓고 마는 것입니다
여건도 안되고 환경도 안되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느냐는 중요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노예가 되어 종속적인 삶을 떠나서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창조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2. 오늘 말씀은 창조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주십니다
1절에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시다라는 의미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운행하시고 인간의 모든 세계를 섭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즉 이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조금 더 정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전능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인간의 능력도 완전하지 않고 오래가지 않습니다
진시황의 진 나라도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여 제국 진나라를 이루었지만, 기원전 206년에 망했습니다 21년을 못갔습니다
대제국을 이루고 큰 왕국을 건설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도 35살에 죽고 만 것입니다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제국도 70년을 못갔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로마 대 제국도 지금 이태리라는 관광자원을 가지고 사는 나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전국을 호령하던 대통령도 4년뒤에 저렇게 감옥에 가있고 ...
자녀들에게 큰 소리치던 아버지도 어느새 자녀들의 손에 이끌리어 요양원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디디고 있는 그 어떤 것도 반석이 아니고 우리가 믿는 그 어떠한 것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은 히브리 사람들을 애굽의 노예의 삶에서 구출해 내셨습니다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셨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신약에 보면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셨습니다
죽어있던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라 하셨습니다
나병환자를 낫게 하시고 눈먼 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3일만에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고 제한이 없으십니다
조용히 살펴보면 우리의 삶도 뒤돌아보면 전혀 뜻하지 않던 도움들로 이제까지 온 것입니다
뜻하지 않던 분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부모, 선생님,..)
내가 지금까지 산 것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하심으로 지금까지 살아 온 것입니다
극한 질병에서 건지신 것도 완전한 실패에서 일어선 것도 그리고 죽고 싶은 그 순간에도 막아주셨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질에도 죽고 설사로도 죽던 시절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오늘까지 자리하게 된 것입니다
결코 내가 전능해서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배려이고 사랑이고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301장을 부르면 언제나 은혜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 지금까지 지내온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쟎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오늘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 너희는 나를 의지하고 나의 언약을 성실하게 믿으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완전하라
즉 내가 한 약속의 말씀을 온전하고 성실하게 꼭 붙들어라!!
3. 그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1)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창17: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창12:2 에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이 말씀은 신약세대에 까지 이르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의 번성을 의미합니다
종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창조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번성하게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환경에 따라 반응하며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며 사는 사람들이 변합니다
마음이 변하고 성품이 변합니다 마침내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온전하게 믿는 사람들, 성령에 감화를 받고 성품이 변하고 가치가 변하여 세상의 가치대로 세상의 방식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번성하게 되고 큰 민족을 이루게 되는 약속인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문제가 있어서 일부교회들과 목회자와 성도들이 구설수에 오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날찌라도 이것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온전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비되고 준비된 자들을 통하여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왕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그럼으로 우리 자신이 부지런히 가정을 복음화시키고 지역을 복음화 시키고 이 죄많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2) 우리를 아브라함으로 만드신다는 약속이십니다
아브라함의 뜻이 무엇입니까?
창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즉 복의 근원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말씀을 아브라함처럼 믿으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위대한 일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나의 삶 자체가 복이 되게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이화숙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학창시절 교회에 나가 성경공부도 했지만 예수님이 사기꾼으로밖에 안 보여 교회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30대 중반 유방암 수술을 받게 되었고, 상황이 어려워 이제는 하나님께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예수는 사기꾼이라며 교회를 박차 나왔는데, 그 예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지만, 그 절박한 상황에서 그녀는 자존심을 버리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적같이 그녀는 치료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영적 방황을 끝내기로 결심했고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받고 강의와 연구로 바빠지자 하나님은 그녀의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유방암이 재발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수술을 또 받게 된 그녀,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건강하던 남편이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너무 기박힌 현실에 그녀는 절망적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병원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펴고는 기도해주셨습니다. 야고보서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기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때 그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니 내게 소망이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고 합니다. 그런 절박한 현실에서 하나님이 계시니 정말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그에게 평안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그 후 주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와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전에는 그런가 하고 무심히 넘겼던 말씀인데 이제는 이것에 내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이 깨달아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죄인인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이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와 와닿는 체험으로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나게 된 그녀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50세가 넘은 나이에 고난을 통해 진리를 발견한 나는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매일 병원에 들려 남편의 귓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학교에 갈 때마다 나의 기도가 필요한 학생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자살을 하려던 학생, 위로가 필요한 학생들이 찾아왔고, 내가 만난 주님을 전할 때 눈물로 주님을 영접하는 일이 거듭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고난의 산을 넘고 계시다는 믿음이 커져 갔고, 나의 문제는 점점 작아졌다.”
(내가 만난 하나님, 고난은 내게 축복이었다. 이화숙 외)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의지한다는 것은 창조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이 귀한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들리시길 축원드립니다
창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