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하리라_욥27:1-5_7월11일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다시 거리두기가 강화되어 예배를 다음주부터 온라인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불안과 통제 그리고 삶의 우울함은 우리의 생각 그리고 우리의 신앙마저도 흔들리게 만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비단 코로나 팬더믹 현상때문만 우리 인생이 힘들겠습니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물질적인 부분이 자꾸 무너지고 육체적으로 중한 질병이 들어 버거운 인생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에 우리는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지?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어떻게 걸어나가야 하는지? 매일 질문앞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질문속에 우리는 지난 맥추감사주일 1시에 교회오빠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연속해서 이어지는 고난속에서 견뎌나가는 이관희 집사와 오은주 집사부부의 눈물겨운 신앙의 고백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결단을 주었습니다.(고대전자공학과)
대장암 4기 진단과 아내 마저 혈액암 4기의 진단속에서 생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려던 신앙고백과 신앙의 온전함은 우리의 신앙을 살피게 하였고 내 생각 중심, 내 삶 중심의 신앙에서 다른 차원의 신앙을 보게 해주었습니다.
심지어는 2017년 KBS스페셜 “앎, 교회오빠”라는 영상으로 방송이 나갔을 때 많은 분들이 물었답니다.
“당신이 믿는 그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믿음이 무엇이기에 사랑하는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앞에서도 담담히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할수 있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때 그는 “어머니의 상한 마음을 지켜 주시고 위로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런 기도도 안 들어주시면 제가 앞으로 어떻게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까? 저를 더 이상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했다”합니다.
그런데 “그 때 제 마음에 성령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비교할 수 없는 깊이로 함께 애통해 하시며 가슴 찢어 울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제 어머니를 품에 안고 눈물짓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관희 집사는 2018년 9월 16일 주님의 부르심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마지막 고통의 순간에도 진통제를 거부하고 온전히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능력을 경험하기를 간구하다가 숨을 거둔 그 마지막 모습은 신앙의 온전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잠깐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고 여러 가지 시험을 스스로 받고 교회를 떠나고 이리 방황하고 저리 방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면서 어느 누구도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신앙생활을 내 인생의 목표로 삼고 추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욥기서에 나오는 욥은 우리의 인생과 신앙적인 삶에 분명한 지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27:5절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욥27: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욥은 사탄이 시험하였습니다. 그 많은 재산도 잃고 자녀들도 죽고 그리고 아내마저 하나님을 저주하라고 하면서 떠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옳은 길인가 바로 그 자리에서 상황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일까? 나의 정당함을 못들으시는 분이신가 아니면 귀를 닫으시는 분이신가 아니면 믿을 필요가 없는 분이신가?
실제로 욥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보면 하나님을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1)자신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이시다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적어도 이정도는 해주셔야지 하는 의로움와 삶의 정당함마저도 들어주시지 않은 하나님이시네 생각한 것입니다.
2)나의 영혼을 괴롭히시는 하나님이시다 생각하였습니다.
몸이 힘들고 삶이 고달파도 견디겠는데 마음이 힘들거나 영혼이 혼란스러우면 사람은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욥도 고난이 계속 이어지니 생각도 흔들리고 영혼이 어두워지는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나의 영혼을 괴롭히시는 하나님.....
이관희 집사도 황망한 슬픔의 현장에서 기도했습니다. “이런 기도도 안 들어주시면 제가 앞으로 어떻게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까? 저를 더 이상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그런데 이 후에 또 아내도 암진단을 받았을 때 어떠한 심정이었을까요?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통의 맨 밑바닥에 서보면 ....다시 말하면 세상 소망 줄 다 끊어지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존재함입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것 이 자체가 신기하고 경이로운 것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에 바라던 모든 것이 멈추어 질 때 비로서 내가 호흡하고 있는 이 순간이 귀하게 겨우 보이고 아무리 수고와 노력해도 안되는 것을 깨닫고 인생의 모든 힘이 빠질 때 비로서 이 땅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고 호흡하고 있는 이 몸자체가 경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27:3절에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욥27: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나의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 앞에서 가느다란 호흡만 남으면
- 무엇이 옳다고 싸울필요도 없고
- 죽기 살기로 매달려 이루게 해달라고 부르짖을 필요도 없고
단지 이제 인생을 마칠때에 그렇게 하나님 앞에 섰을때에 어떻게 주님께서 나를 보실까? 어떻게 내 신앙을 평가하실까? 다른 차원의 영안이 열리게 되는 것이지요 ....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온전함입니다.
나의 처지 나의 환경, 나의 세상욕심이 뒤로가고 하나님앞에 서 있을때에 어떻게비춰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단 1이라도 이루고 완성시켰는가?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평가하려는 삶이 바로 신앙생활의 온전함을 추구하는 믿음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욥27: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여기서 너희란 위로하러 온 세명의 친구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입니다.
이들은 와서 자기식의 위로를 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이런 사람입니다. 위로한답시고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너무 힘들어 좋겠는데 자기식으로 툭던지는 말을 합니다. 괜찮아 다 좋아질 거야 힘내~~ 그저 아무소리말고 옆에 있다만 가도 위로가 되는데 괜한 소리를 더해서 짜증나게 만드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안괜찮은데 자기가 내 사정을 얼마나 이해한다고 툭~ 던지면서 야 야 괜찮아 ~~ 힘내~~ 이러면 아주 사람미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3명의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그랬습니다.
엘리바스는 너 기도안해서 그래.....
빌닷은 너 하나님게 죄져서 그래 .....
소발은 너 잘났다고 하지 말고 회개하고 죄악에서 떠나 ....
온갖 고난의 눌림속에서 호흡만 간신히 하고 생명 겨우 부지한 사람에게 이런 말로 위로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식의 자기 위로이지 욥을 이해하고 욥을 갚이 바라보는 위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말합니다.
너희들의 말은 다 맞는 말이지만 내가 수용할수 없고 위로가 되는 말이 아니야
지금 나의 기도는 죽기전에 나의 온전함을 하나님앞에 보이는 것뿐이야
내가 여태까지 믿고 의지했던 그분만 생각하고 그분의 사랑만 헤아리며 주님만 고대하는 것이야 ....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온전함, 믿음의 온전함은 행위가 아닙니다.
온전한 믿음생활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나를 보기 시작하는 마음이고 눈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믿음의 온전함을 2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온전함이라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을 믿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어떤 환란, 어떤 시험, 그 어떤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가하는 환경과 여건이 하나님의 사랑을 폄하하거나 평가절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2)피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가 죄사해졌음을 믿고
3)부활하셔서 영생을 선물하셔서 영생을 누리게 됨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강같이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붙잡는 것이 바로 믿음의 온전함입니다.
둘째는 믿음의 온전함이란 하나님앞에 서있는 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분지 일이라도 닮아있는지를 생각하며 사는 삶입니다.
내 인생을 나의 생각으로 ,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으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희노애락은 다른 차원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삶을 해석하는 각도도 달라질 것입니다.
나의 기쁨 나의 성공이 뒤전으로 물러가고 주님의 기쁨 주님의 승리가 앞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해석이 달라지니 슬픔도 변하여 찬송이 되고 기쁨도 변하여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1950년 6.25 전쟁당시 북한 공산당에게 밀리고 밀려 낙동강 이남으로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맥아더 사령부에서는 한국 정부를 일본으로 옮기라고 권유하였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내가 진해 바다에 빠져 죽을지 언정 이 땅을 떠나지 않겠노라"하며 진해에 정부를 차렸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주일 진해에서 첫 예배를 드리면서 성가대 지휘자인 나운영 교수가 작곡하여 나온 곡이 바로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였답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하여금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며 ... 진실로 선함과 인자하심이 나의 사는 날동안 나를 따르니니 ..
내가 내가 여호와전에 영원토록 영원토록 거하리로다 ...
내가 내가 여호와전에 영원토록 거하리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온전함을 버리지 않고 믿음의 온전함을 이루는 삶인 줄로 믿습니다.
코로나 팬더믹 시대에 믿음의 온전함을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