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따르기 6.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삶_행18:5-11_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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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따르기 6.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삶_행18:5-11_2월20일

성문Shalom 0 1593 0

비전 따르기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삶

본문: 사도행전 18: 5-11 

 

요새 우리는 하루에 엄청난 말과 소식을 듣고 삽니다.

30-40년전만 하더라도 주로 주변의 소식과 공중파 방송과 신문에서 나오는 정보를 듣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정보화시대에 들어서면서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모바일 시장이 확장됨으로 이제는 각 개인이 전세계 구석 구석의 소식과 뉴스를 찾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0년 모바일 컨텐츠 시장 규모가 29조에 달했는데 21년에는 모바일 컨텐츠시장 규모만 32조에 달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더구나 유튜브 페이스북등을 통해 엄청난 정보를 쏟아붓고 있고 개인의 여러 가지 생각과 가치를 늘 들을 수 있어서 의자에 앉아서도 핸드폰 하나들고 흥미진진하고 다이나믹하게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루에도 수십번씩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얼마전에 가짜뉴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허위조작 정보라는 말이지요 즉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명백한 사실 관계를 조작한 정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방에서 쏟아내는 기사와 뉴스로 매일을 드라마틱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가짜 뉴스도 많고 분간하기도 어렵고 판단하기란 더욱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도합니다.

-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랑하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으니까요 대통령은 모름지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 존경받는 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적으로 독일이 부러운 이유는 존경받는 정치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2차세계전쟁때 나치를 옹호하고 남의 나라에 폐를 끼친 나라였지만 나라 전체가 회개를 하고 빌리브란트라는 총리는 폴란드에 가서 홀로코스트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정도로 사죄를 하면서 백성들과 주변 나라에 존중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김황식 전 총리가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이란 책을 출판했는데 내용에 괴테, 아이슈타인보다 정치인이 존경받는 나라라서 나는 부럽다고 하였습니다.

작년에 퇴임한 여성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무려 16년간을 사랑받으며 통합 정치를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이 때에 차가운 무관심이나 뜨거웠다가 금방 식는 냄비같은 반응을 잠시 멈추고 시대를 향해 그리고 우리들의 후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무릎을 꿇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 우리의 얼굴을 주님께로 돌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실 것입니다. 나라와 가정과 교회를 위한 주님의 계획을 들으실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우리는 불안과 초조, 긴장과 압박의 상황에서 조용히 빠져 나올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정말 익숙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음성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로고스의 말씀이 레마가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음성으로 들리기 시작하면 비로서 예수님의 비전을 따르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험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직통계시를 들었다는 사람, 매일 자신에게 귀찮을 정도로 말씀하신다는 사람, 밥먹는 것, 걷는 방향까지 말씀하신다는 사람. 슈퍼마켓에 가서 비누 살 때조차 기도를 하고 음성듣는 사람 등등 주변이 많이들 이야기하고 책에도 나오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1)주관적인 확신과 욕심에 근거하거나

2)자신의 확증편향 즉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경향에 근거하거나

3) 사탄의 속삭임을 분간하지 못하고 음성으로 듣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사탄의 속삭임이란 결국 이단으로 끌고 가서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직통계시자들이 혼란한 시대에 나타나는데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 자기는 직접 하나님을 만나서 특정 사건에 대하여 보고들었다 고합니다.

- 자신이 직접 들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무조건 절대 복종해아한다고 말합니다.

-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성령을 거스리는자 라고 정죄하고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줍니다.

- 얼마지나면 자기가 계시자가 되고 성경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 진지하고 지속적으로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 거액의 헌금과 돈을 요구합니다.

 

그럼으로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하나님의 음성을 추구해야 하나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분별하면서 하나님이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분명한 음성으로 들릴려면

1)정규예배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즉 예배하는 자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2)성경말씀에 관심이 가고 읽고 싶어야 합니다.

3)즐겨 찬송하며 기도하면서 주님과 가까워지고 싶은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4)그리고 고난과 어려움속에서 사명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계속 구하셔야 합니다.

 

특히 코로나 델타, 오미크론 확산으로 이어지는 제한되고 스스로 주눅이 드는 상황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살 소망이 생기고 살 의지가 생기고 살 기회가 생기게 될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은 낙심한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복음전파자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사도바울이 2차 전도여행중입니다. 처음 유럽으로 건너와서 빌립보 데살로니가를 거쳐 그 유명한 아덴, 즉 아테네로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사도바울은 이 유명한 예술과 철학의 도시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아테네입니다.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등의 철학자들이 활동한 도시입니다. 민주주의가 처음 시작된 도시입니다. 사도바울 생각에 자기의 쌓았던 지성으로 철학의 도시에 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줄 았았습니다.

17: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그런데 다양한 신이 존재하고 철학적인 도시에서의 복음전파는 효과가 제로였습니다.

17: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내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한명도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도바울은 고린도로 갑니다. 낙심하고 있던 차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방하고 대적하자 그만 절망에 하게 됩니다.

18: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옷을 털었다는 라는 것은 이제 사역을 접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핍박을 당하고 돌에 맞아 던져졌어도 일어나서 복음을 전하던 사도바울에게 이제 한계가 온 것이고 넘어진 순간이 온 것입니다.

한 마디로 탈진, 번 아웃(burn out)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번 아웃 된 사람들이 자주 나옵니다.

-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 선지자도 이세벨 왕후를 피하여 도망다니다.가 광야길에서 로뎀나무아래서 죽고 싶다고 합니다.

) 왕상19:4 남쪽의 광야로 하룻길을 더 걸어갔다. 거기서 그는 어느 싸리나무 덤불 아래에 앉아 죽기를 자청하였다. '주님, 이제 더 이상 살 수가 없습니다.. 제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조상들과 똑같이 죄 많은 사람으로 이렇게 굶주려 죽습니다..‘

 

- 중년에 중병이 든 히스기야 왕은 이렇게 웁니다.

38:10 내가 말하기를 나의 중년에 스올의 문에 들어가고 나의 여생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38:13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 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오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그렇게 예수님께 큰소리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한 후에 낙심하고 웁니다.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오늘 사도바울도 이제 옷을 털어버린 것입니다. 입이 다물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힘들고 낙심에 낙심을 더하면 입부터 다물어집니다.

고난의 파도가 계속 연이어지면 입이 다물어지는 것입니다.

혹시 이 아침에 마음이 차가워지고 낙심이 더해서 무너진 분들이 계십니까?

저녁에 자면 이대로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생각하시는 분들은 안계십니까?

 

오늘 사도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도 들려지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사도바울은 낙심한 밤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주님의 음성으로 들을 줄 알았습니다.

들을줄 알았다는 것은 듣고 행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8: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극한 시험을 이기고 절대적인 낙심을 뚫고 다시 그의 사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고린도 전서 후서를 쓸만큼 큰 부흥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이후 3차 전도여행도 하고 로마에까지 복음 전하는 역사도 이루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그 말씀을 자신에게 주신 주님의 음성으로 들을 줄 안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음성을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복음을 전파하라, 열매가 없어도 전파하라

 

사람이 왜 입이 다물어지는가 하면 현상을 보고 결과를 보고 미래를 예단하고 상상하면서 절망과 죽음의 검은 구름이 심령을 덮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란 어떤 위협을 감지하는 작용인데 일반적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4단계를 거칩니다. 1)과장된 상상을 합니다.

2)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공포스럽게 반응합니다. 탄식과 후회, 원망과 비난이 시작이 됩니다.

3) 사고회로가 정지됩니다. 마비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4) 우리의 뇌리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래서 미래의 기회를 놓칠때가 많이 있게 됩니다.

 

현재를 위해서도 미래를 위해서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는데 오늘 주님은 사도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일어나라 담대하라 말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또한 이사야를 통해 주시는 말씀하시는 것을 같이 주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둘째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이 지키시기때문이고

주변에 하나님의 백성이 동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그렇습니다. 지금도 무너진 그 자리에서 우리 하나님은 주의 날개를 펴셔서 나를 지키시고 계십니다.

그 어떤 세력도 ,마귀와 사탄도 그리고 무거운 절망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뚫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비방과 악한 궤계를 막아주십니다. 미리 꺽어주십니다.

경제적이고 환경적인 절망도 하늘의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면서 견뎌나가게 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다시 풍요롭게 하실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극상품의 포도주가 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바위를 터뜨려 생수를 주시고 그칠 것 같지 않는 모든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 옆에 도울 사람을 준비하셨다는 음성입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 너에게 호응하고 복음을 받아들여 너의 일을 도울 자가 많으니라 ..

혼자만 남았다고 탄식하던 엘리야도 이 음성을 똑같이 듣습니다.

왕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주시는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따라하시면 좋겠습니다.

내 영혼아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

 

이렇게 다시 주님을 따라가시길 축원드립니다.

찬양하시겠습니다.

 

1. 환난이 닥쳐와도 슬픔이 몰려와도 나는 찬송할 수 있다네

그것은 주님의 사랑 그것은 주님의 능력 내 맘속에 늘 함께 가득하네

 

2. 쓰러진 것 같으나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주님 말씀 붙들고 확신하네

넘어진 것 같으나 다시 회복할 수 있음을 주님 약속 믿고서 기도하네

 

후렴 일어서리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리라 주님의 능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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