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서 영원한 고향을 경험하세요 (누가복음2장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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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서 영원한 고향을 경험하세요 (누가복음2장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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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서 영원한 고향을 경험하세요

2017924

본문 : 누가복음241-47

 

고향! 듣기만 하여도 정겹고, 생각만 해도 푸근한 말입니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추석 명절이 다가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고향을 찾아, 친족을 찾아 이동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올해는 명절과 연휴기간이 길어서 큰 교통체증없이 다니실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찾는 열심은 대단합니다.

아마 세계에서 2등 가라면 서러워할 겁니다.

‘귀성 전쟁’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고향길이 고생길이지만, 기어코 고향을 찾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게 바로 우리들입니다

 

미국 LA에는 고향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작은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 이름은 '언제나 그리운 고향 교회'라고 했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고향에 대해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고향 노래가 유난히 많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 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고향의 봄, 홍난파 작),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을 눈에 어리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가고파, 이은상 시/김동진 곡)

모두 다 한국인의 심령 깊숙이 스며있는 노래들입니다.

이렇게 그립고 좋은 고향이기에 모든 이들이 고향을 찾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는데...

여러분, 언제 우리가 고향 생각을 많이 합니까?

이런 명절말고도 괴로울 때, 병들었을 때, 늙어졌을 때 고향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또 많은 이민자들의 소원이 종국에는 그 육신이 고향 땅에 묻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독 한국인만의 정서는 아니고,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귀소본능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향은 우리에게 안식과 고된 현재의 삶을 살아 갈 때 위로를 줍니다

그래서 매년 가족들하고 싸우더라도 찾아가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특히 올해 명심하시고 하지 말아야할 말! 조카나 젊은 사람들에게 야! 너 아직도 직장없냐? 결혼은 언제 하냐?.... 이런 말하시면 큰일납니다...

바라건대 쉼과 넉넉함이 있는 추석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보다 명절에 의미에 있어서 한가지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그들은 명절을 하나님을 기뻐하는 날로 정해 지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입니다

일주일동안을 즐거워하는 명절입니다 그리고 명절에 꼭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찾습니다

왜 자기들이 난 고향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명절에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 순례의 길을 걷는 것을 삶의 기쁨으로, 인생의 명절로 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고된 삶을 잠깐 멈추어서 우리 인생들의 영혼의 고향인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장차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며 위로와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히11: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히11: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히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럼으로 풍파많고 험난한 인생살이속에서 하나님을 고향으로 삼고 하나님의 나라를 고향으로 삼는 사람은 복된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41절에 라고 말씀이 나옵니다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노예의 삶에서 구출하여주신 은혜를 기념하여 드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명절입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들은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예수님께서 12살이 되셨을때 같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날들이 마치고 가족들이 다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하룻길을 간 다음에 보니까 예수님이 안계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움직이고 여성들은 여성들끼리 움직이다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게 되는데 한참을 찾다가 사흘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보니까 성전에서 랍비들과 대화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가 말합니다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눅2: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대답하시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의 가출 미아 사건이 아닙니다

부모의 마음을 속썩인 것을 지적하는 사건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인생들이 거할 하나님의 품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품, 아버지의 품을 느낄 수 있는 이 세상에서의 가장 좋은 장소는 바로 성전이요 교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러 곳에 가서 하나님을 추구할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성전에서 발견되어져야합니다

즉 하나님 품에서 명절을 보내고 하나님의 품에서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품에서 생기를 얻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위기 때에, 가장 힘들고 곤고할 때에 성전을 찾아갈수 있습니다

성전은 1)이 땅에서 하나님의 품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2)하나님의 위로와 말씀과 미래를 향한 사명은 성전안에서 발견되어 지는 곳입니다

이사야선지자는 성전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험하고 제단 숯불 입술에 댈 때 그는 민족을 향한 소명의 삶을 깨닫고 그 길을 걸어갑니다

민족을 일으킨 것입니다

3) 성전에서는 죄사함의 은총과 사유하심에 대한 자유함을 경험하게 되는 곳입니다

 

특히 오늘 예수님은 성전을 아버지 집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살아계신 부모님이 계신 곳! 돌아가신 부모님이 묻힌 고향이 이 땅의 고향이라면 영적이고 정신적인 아버지가 계신 고향은 바로 성전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환난이 오나 시험이 오나 눈물이 나고 좌절이 오나 늘 아버지 집에서 위로 받고 아버지 집에서 안식을 얻는 믿음의 삶을 사시길 축원드립니다

 

인생의 밤에 누군가 우리를 찾는데 성전에서 발견되어질 때 여기에 살길이 있고 여기에 새로운 사명의 길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왜 꼭 성전을 고향찾아가듯이 가야합니까?

그 구체적인 이유 2가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아버지의 집에는 풍성한 영혼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46-47절에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고 하였습니다.

원래 1)성전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처소이며 또한 율법을 가르치고 배우게 하는 교육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도처에 유랑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간 곳마다 회당을 짓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선민교육을 시키게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말씀이 있는 곳이고 말씀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15:17에 보면 집을 떠난 탕자가 아비의 집을 그리워하면서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하고 탄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버지 집에는 먹을 양식이 풍족하지만 아버지 집을 떠나버린 자식에게는 굶주림만 있을 뿐입니다

아모스 8:11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만족하게 하고 인생을 살찌게하는 신령한 양식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 여행 기간동안 하늘의 양식 만나를 먹은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말씀을 통하여 신령한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2)교회는 사람들에게 축복의 원리를 깨닫는 장소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의 도리를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1-2에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가정의 복, 인생의 복을 받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사람들은 힘을 얻고 갈수록 창대케되는 풍요의 복, 담장을 뛰어넘는 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출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천대까지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은 풍요로운 삶을 얻게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집인 것입니다

 

둘째는 아버지의 집에는 예배의 의식과 예절이 있기에 고향을 찾아가듯이 가야하는 것입니다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찾아가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성전에 올라갔을 때 소년 예수는 나이 많은 선생들과 율법의 문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그 선생이란 노련한 랍비들입니다.

그 당시 유대사회에서 선생의 칭호를 받는 사람은 산헤드린 공회의원이거나 존경받는 율법 학자들에 해당됩니다.

이들은 성경 말씀을 이론적으로도 가르칠 뿐 아니라 거기 따르는 의식과 생활양식을 지도하는 자들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정상적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은 예절을 배우게 됩니다.

어른이 있는 자녀들은 삶의 규칙을 배워나갑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형제끼리 화목하며, 가족 공동체간에 지켜야 될 예절이 몸에 배여 있어서 어디에 가도 자기의 행동을 절제할 줄 알게 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신앙과 생활의 요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의 원리를 지켜나가게 될 때 균형있는 신앙인격을 갖추게 됩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식을 배웠습니다. 율법에 명시된 제사의 제도에 따라 제단을 섬기는 제사장 앞에서 제물을 드리며 각종 제사 행위의 규례를 지켰습니다. 이것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특권이요 또한 의무였습니다

이와 같은 성전예배와 제사 의식이 자손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그 백성들은 수천년 동안 세계각처에 유랑생활을 하고 무수한 역경을 거치면서도 선민의 자존심과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민족의 혼을 지켜 나갔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은 건강한 교회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올바로 예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고 자녀들은 배워야합니다

예배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행위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통로인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가정은 살게 됩니다

그 공동체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5:1에 "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사람을 찾으십니다. 거룩한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망해가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거룩한 의인 열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고 사람들의 위로가 되고 세상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성전에서 찾으십니다

 

유명한 빅터 프랭클린의 단편 소설 중에 <곡예사의 헌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난쟁이 곡예사가 있었습니다. 이 난쟁이가 거꾸로 서서 공을 돌리고 접시를 돌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돈을 던져 주어서 그것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그나마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불쌍히 여긴 신부님이 성당에 데려다가 심부름하며 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난쟁이가 성당에 온 뒤로부터 차츰 차츰 얼굴에 생기를 잃어갔습니다.

그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미사를 드리면서 이런 얘기를 듣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가진 재능을 가지고 주님께 드리는 자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다.”

그때 난쟁이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가진 재능은 거꾸로 서서 공 굴리는 것 밖에 없는데, 접시를 돌리는 것 밖에 없는데 이것이라도 주님께 드리자.” 밝은 낮에 드리자니 창피해서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는 새벽에 예수님상 앞에 가서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발가락으로 접시를 돌리고, 자기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재주를 부렸습니다. 난쟁이는 최선을 다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주를 부렸습니다. 이 일을 매일 매일 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난쟁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삶에 보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청소부가 성당에 가서 청소를 하려고 하는데 난쟁이가 거룩한 예수님 상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서 신부님에게 달려갔습니다. 청소부의 얘기를 들은 신부님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새벽에 숨어서 지켜보았습니다. 난쟁이가 무릎을 꿇고 “예수님, 제가 가진 재주는 이것뿐이옵니다” 하면서 온갖 재주를 다 부리며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쇼를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신부님이 혼을 내려고 가는 순간 예수님이 내려오더니 무릎을 굽혀 한쪽 손으로 그 곡예사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대가 나를 기쁘게 했노라. 그대 땀을 내가 받았노라. 그대 눈물을 받았노라. 그대의 재능을 내가 받았노라” 하고 말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신부님이 무릎을 꿇고 “오, 주시여. 나도 저 난쟁이와 같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땀을 쏟아 주께 드릴 수 있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주님을 위해서 땀 흘려 보았느냐, 마음을 바쳤느냐, 너는 나를 위해 무슨 일로 최선을 다했느냐?”

혹시 한 번이라도 주님을 위해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습니까?

 

한 맺혀 울던 때는 있었겠죠. 서러워 울었던 때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격해서 가슴에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내게 있는 것을 아낌없이 쏟아 바쳐본 적이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내가 죽고 싶은 감동이 오는 때가 있습니까?

‘내가 순교해야지’ 하는 마음이 우러나는 때가 있습니까? 날마다 그렇게 살지는 못하지만 어느 한 순간만이라도 그럴 때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성전안에서 .....

 

눈물을 쏟아 주님께 드려지는 마음, 땀을 쏟아 바치는 그 마음, 내게 있는 재산을 가지고 한번이라도 주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쏟아내는 그 손길이 있을 때 주님이 ‘내가 너의 땀을 받았노라 내가 너의 눈물을 받았노라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들의 섬김으로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섬김이 가정의 거룩한 전통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스스로 바뀔 수가 없습니다

단지 성전에서, 바로 아버지집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바로 그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변하게 될 것입니다

추석명절기간입니다

우리가 고향을 찾듯 마음에 고향을 그리듯 아버지 품을 그리워하시고 종국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시는 영적으로도 풍요로운 계절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17-12-17 21:12:31 SERMON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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